졸업했다. 작년에.
강희 덕에 반년도 지난 후에야 받은 졸업장. 졸업식을 제꼈다고 졸업장도 안챙겨보내주는 한성대국문과사무실 밉다. 원래 그런 건데 내가 개념없이 바라는 것인지는 모르겠다만...
졸업은. 또 하고 싶다.
유치원 졸업 때는 잘 기억안나지만..어쨌든 누나들처럼 뭔가 전과도 펴놓고 공부하고 그러고 싶었는지 어쨌는지...나도 아마 다른 아이들처럼 초등학교를 가고 싶어하지 않았을까. 뭐 그냥 별 기억없는 유치원 시절이었다. 사진을 아무리 뚫어져라 보고 엄마나 누나가 뭔가 말을 해줘도...난 한 개도 기억 안난다.
초등학교 때는..좀 어렴풋하지만 기억난다. 어줍잖게 학교 짱의 패거리에 껴설랑은 초등학생 주제에 수업을 제끼고 "천하만화"를 사보러 5단지 상가를 다녀오고..참..어이없었던 졸업반-6학년..어울리지도 않게 머리를 기르고 뭔 개깡인지 안경도 벗고 찍은 그 졸업사진 마냥(다행이 초점이 엉망이다) 흐릿흐릿한 그날들. 중학교에 가면 뭐가 있는 줄도 모르고 일단 국민학교라는 벗어난다는 것을 나름 특별하게 여겼던 것 같기는 하다. 학교 끝나고 착실히 공부하는 아이들이 보냈던 그 지긋지긋한 시간들을...난 놀이터에서...그냥 어디의 계단에서...대강대강 보내던 시절인 것은 분명한데...기억이 가물가물하군. 그래서 결말은...유치원보다는 인상깊었지만 여전히 흐릿한 기억이라는 것인 듯 싶다.
중학교 때. 고등학교 때. 다소 기억이 좀 더 분명하다. 문제는 이 때 부터다. 난 분명 실수가 많은 녀석이고 이것은 내가 어릴 때도 다르지 않았을 바. 중학교 때 저질렀던 몇 가지 나쁜 짓들. 억울했던 일들. 우스운 일들. 그런 것들이 기억하기 싫다. 좋은 기억은 잘 없다. 나쁜 기억들은 선명하다. 그래도 그나마 졸업은 내게 그것을 잊을 수 있는 기회였다. 뭔가 정리되는 듯하고..뒤돌아보지 않아도 될 것 같고.......딱 한 번 해본 전학보다는 살짝 덜하지만...정말 상큼한 변화-핑계 거리였다. (이 때의 변화는 과오를 대강 둘러쳐 막아버리는 가면과 망토를 뒤집어 씀이다.)
졸업은. 그렇다.
면죄부..........까지는 아니어도.. 뭔가 새로 시작할 기회이다. 그 말은 다시 말하면 새롭지 않은, 구질구질한 그것들을 덮어버릴 수 있는 찬스. 앞으로 만나는 사람들은 그다지 내 과거를 모르는 사람들. 난 이제부터 내 마음대로 포장할 수 있는 너무나 사랑스러운 위치. 그래서 내게는 회심의 미소가 가득한 졸업사진들이 있다. 아자, 이제 쪽팔린 거 다 까먹고 다시 잘 살아보자!
이제 더 이상 졸업은 없다. 꼭 그래서만은 아니지만 여하튼 대학 졸업앨범은 신청비를 돌려받아서 술 먹어버리고 안샀다. 회심의 미소가 없으니까...일까...아마 맞을 듯. 회심의 미소가 없는 우울한 졸업. 식날에는 가지도 않았다. (Mnet Japan에 납품하는 날이랑 겹쳤던가 해서 밤새서 뭘 하고는 11시까지 못자서 아마 안가버렸던 기억이다.) 뭔가 지난 실수를 덮어버리고 새로 시작하는 것이기는 한데....이번에 졸업하면 다시는 그런 기회가 없으니까. 사회에서 뭐라도 실수하면 2년 후,5년 후 잊어 줄 졸업이 어려우니까. 참, 졸업은 없으니까.
매 순간 긴장하고. 실수해도 용서가 안되고. 다음이 없는 게 사회생활이구나. 와...큰 일이다 싶다.
사실 이런 생각 내일이면 또 잊고 별 생각없이 되는대로 지껄이고, 아무렇게나 행동하고 할 내 모습이 선하다.
근데 어쩌나. 난 그런 내가 제일 사랑스러운데. 내 멋대로 하는 거야. 아무 이유없어.
젊다. 어리다.
더하기 1.
그래서....졸업하고 학교 때 친구를 만나는 게 가끔은 싫을 때가 있다. 내가 잘못한 거는..아직도 숨기고 싶고 상처같아서 말이다. 뭔가 대단히 (내가)구린 모습으로 헤어진 여자친구를 만나는 것만큼 싫지는 않지만 군대에서 갈구기만 한 후임병의 전화를 받아주는 것보다는 싫은 일이다. 해코지 당할까봐가 아니다. 그냥 덮어놓은 것으로 만족하는 그 기억이 다시 생각나는 게 싫을 뿐이다. 방한구석에 종류별로 잘 쌓아놓은 책 or CD를 구경하다가 아래쪽에 꽂힌 책 or CD를 꺼내야만 하는 일이 생겼을 때 느끼는 짜증만큼.
'오래된 이야기 > 자칫하면 잃을我'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기 (0) | 2008.01.03 |
---|---|
핸드폰 분실 소동 (0) | 2007.04.22 |
잠이 많은 것은 게으른 것. (0) | 2007.03.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