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B.S. 라디오 드라마 "평범한 사건"
Effect - 의자 끄는 소리, 웅성대는 소리 위로 수업 시작 종소리.
반장 : 차려. 경례.
모두 : 안녕하세요.
Effect(Background) - 웅성대는 소리 작게.
선생 : 임마, 니들은 교실이 운동장이냐? 왜 이렇게 먼지가 많아? 창문 다 열어. (점점 작아짐) 자식들이 시간되면 딱딱 수업준비 할 생각은 안하고…. 이게 뭐하는 거야? 책 펴.
Narr. : 난 정말 모르겠다.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건? 내가, 나만이 잘 할 수 있는 건, 뭘까? 아니 그보다 먼저 이 학교라는 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뭘까? 난 여기 뭘 하려고 있는건지 도무지 모르겠다. 이런 문제의 답은 어떻게 해야 얻을 수 있는 건지 아무리 고민을 해도 또 모르기만 할뿐이다. 궁금 지수로 따지자면 한계치 100에 무려 99에 달하는 궁금함이다. 너무 평범한 일상 때문일까? 영, 답이 나오질 않는다. 머리만 복잡하다.
Music(Background) - Title Music.
진행 : WBS Drama, 평범한 사건. 극본,*****, 연출, 남***.
Music off.
Effect(Background) - 웅성대는 소리.
동진 : 야, 이거 봐.
재석 : 단성대 고교 백일장?
Effect off.
동진 : 재석이, 너 한 번 나가봐라. 딱이다, 야.
재석 : 글쎄. 한 번 나가 봐?
정호 : 뺄 게 뭐 있냐? 혹시 알어? 이걸로 대학 갈지?
재석 : 근데, 내 글은…. 야, 학교 선생님들도 안 뽑아주는데, 뭐. 괜히 헛수고하기 싫어.
정호 : 헛수고는 무슨 헛수고야? 대학 교수들은 다를지도 몰라. 한 번 해봐.
동진 : 야, 근데 이게 일요일이다. 야. 학교도 못 빼먹고…. 에이, 별론데. 헤헤.
남수 : (숨차서) 야, 야! 얘기 들었어? 김기범 사고 친 거 들었어?
재석 : 기범이가 무슨 사고를 쳐?
동진 : 왜? 지 왕따라고 자살이라도 했다냐?
남수 : 아니. 식칼로 박길주 배 찔렀데.
정호 : (놀라서) 뭐? 야! 그게 진짜야? 그래서, 그래서 김기범 어떻게 됐어?
남수 : 뭐, 끌려갔겠지, 뭐.
동진 : 한 번 찌르고 말았데?
남수 : 아니. 김기범이 찌르고는 말야…….
Music -
Narr. : TV에서나 보던 신기한 일이 우리 학교에서도 일어났다. 중학교를 같이 졸업한 기범이가 왕따가 된 것도 놀라운 일이었지만, 이번 일은 정말, 놀라웠다. 학교가 도대체 뭔지 모르겠다. 공부를 하라는 거 같기는 한데, 진짜 제대로 공부하는 녀석보다는 딴 짓하는 녀석들이 더 많고, 영화같이 살벌한 일들은 점점 늘어만 가고, 참 삭막한 곳이다. 나말고도 수백만의 학교에 다닌다는 녀석들, 다들 이 삭막함을 느끼고 있을지 궁금하다.
Music -
선생 : 넌 안돼.
재석 : 예?
선생 : 이런 백일장은 거, 누구냐. 3반의 준엽이 처럼 성적도 좋고, 교내 백일장에서도 인정받은 그런 애들이 나가는 거야.
재석 : 저, 그렇지만….
선생 : 학교에서 나갈 수 있는 인원이 제한돼 있는 거 알지? 그럼, 그만 가봐.
Effect - 문 닫는 소리
동진 : 뭐래? 야! 말 좀 해봐. 못나간데?
재석 : 어? 어.
동진 : 왜?
재석 : 뻔하지. 나같이 아무 것도 없는 놈은 못 나가는 거. 내가 뭐, 공부를 잘 하냐, 어디서 글이 뽑히길 해 봤냐. 치이, 별 볼 일 없는 놈은 끝까지 별 볼 일 없는건가 보다.
동진 : 선생들이 다 그렇지, 뭐. 게다가 우리 담탱이 별명이 괜히 해골바가지냐? 그게 생긴 거 때문은 아니래잖아! 암튼, 신경 꺼. 잘됐다, 야. 그 날 정호랑 월미도나 가자. 우리 가본지 오래 됐잖아.
재석 : 그럴까?
Music(Background) -
Effect(Background) - 환호성
정호 : 호오! 야, 기분 최고다!!
동진 : 야야아-!
재석 : 하하하, 야!
Music, effect off.
재석 : 정호야, 우리 한 번 더 타자.
동진 : 야, 너무 늦었어. 벌써 9시 반이야. 빨리 안가면 차 끊길 것 같은데.
정호 : 그래. 그만 타자. 돈도 별로 없잖아.
재석 : 헤, 너무 아쉬운데.
Effect - 오토바이 폭주음, 경적 소리. 경찰차 소리.
동진 : 야, 빠라빠라빠라밤이다.
정호 : 쟤 지금 짭새한테 쫓기는 거냐? 재밌겠는데.
재석 : 야, 저거 박길주 아냐?
동진 : 그러네? 저 자식 다 낮긴 나았나 보네.
정호 : 김기범 그 녀석, 찌를라면 제대로 찌를 것이지. 죽이지도 못하냐? 으이그.
재석 : 야, 기범이도 죽일 생각은 없었을 거야. 뭘 그런 말을.
동진 : 죽일 만도 하지. 길주 저 자식이 김기범 좀 괴롭혔냐? TV에서 왕따 피해 실태라고 나오면 다 따라했잖아. 내가 김기범이었으면 아주, 목을 땄을 거야.
재석 : 치이, 조동진, 니가 과연?
정호 : 또 뻥이지, 뭐. 야, 조동진 네가 박길주 목을 따면, 난 우리 해골바가지 담탱이를 63빌딩에서 밀겠다, 임마.
동진 : 하하. 짜식.
Effect - 차가 급하게 서는 소리와 오토바이 넘어지는 소리.
동진 : 뭐, 뭐야?
정호 : 재석아, 저거 박길주지? 지금 치인 거 박길주 맞지?
재석 : 어,어…. 맞아. 박길주 맞아. 어.
동진 : 야, 저 자식 그래도 튀는데. 어라? 그래도 쩔뚝거리네.
정호 : 오늘 굉장한 구경했네. 낼 애들한테 끝내주게 얘기해 줘야겠다.
동진 : 과장과 약간의 뻥을 넣어서?
정호 : 하, 하, 하.
Music -
Effect - 통신 접속음, 마우스 클릭 소리 잠깐씩.
재석 : (Mic. - echo.) 학생복지위원회. 자유게시판. 3번. 어디 보자. 어? "학교는 누굴 위해 존재하는가?" 올린이. 세상괴상? 아이디 한 번 재밌네. 어디.
Effect off.
세상괴상 : 서태지는 컴백홈에서 세상의 끝을 본 적이 있다고 했다. 난 지금 학교의 끝은 보고 있다. 어른들은 우리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절대 신경 쓰지 않는다. 학교라는 주형에 학생이라는 쇳물을 붓고 자기들과 똑같이 생긴 모양의 쇠가 나오길 기다리는 게 기성 세대다. 쇳물로만 보이는 우리들에게도 자신들과 같은 자유 의지가 있음을 무시하고 단지 자신들이 보여주는 길로만 가게 하려는 것이 어른이고, 지금의 학교의 모습이다. 이게 뭔가? 누굴 위한 교육인가? 앞으로 21세기를 이끌어 나갈 신세대들을 위해줘야 한다면서 제대로 하는 것이 도대체 뭐가 있는가? 선택의 기회는 줘보지도 않고 강요만 하는 게 교육인가? 그리고….
재석 : 흐음. 그도 그렇군. 그치만 어딘가 좀.. 어디 볼까? "세상괴상의 글에 대한 보충"이라? 기쁜슬픔? 음.
Effect - 클릭 소리 한 번.
기쁜슬픔 : 세상괴상의 말도 일리가 있다. 물론 학교는 그 모양이다. 진짜 엉망이고, 그의 말대로"끝"이다. 난 학교가 다 찌그러진 쓰레기통으로 밖에 안 보인다. 하지만 쓰레기통도 문제지만 쓰레기통 안에 들은 쓰레기가 진짜 문제다. 그 중에서도 주체여야만 하는 학생들은 학교가 그 모양인데도 전혀 바꿔 볼 생각도 안하고 가만히 앉아서 버티고 있다. 다들 그저 어떻게든 졸업만 하면 되겠지 하고 있는 것 같다. 자신의 꿈이 뭔지도 모르고, 자신이 학교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면서 그저 버티고만 있는 것이다. 난 작년에 고딩 생활을 청산했다. 지금은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으면서 동시에 영화 공부를 하고 있다. 이게 바로 내가 원하는 쓰레기들의 모습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위해서라면 고등학교 졸업장 따위에는 집착을 버릴 줄 알았으면 좋겠다. 또…
재석 : 어후, 대단한데…. 쓰레기라…. 나도 쓰레긴가? 쓰레기. 음, 쓰레기라….
Music -
Effect - 캔 따는 소리. 봉지 소리.
정호 : 아, 아침을 안 먹었더니 너무 배고프다. 야, 나도 콜라.
동진 : 자.
재석 : 동진아. 너는 네가 학교 왜 다닌다고 생각 하냐?
동진 : 학교? 다니기는 싫지만 안 다니면 뭐 하게? 내가 뭐 재주 있냐.
정호 : (우물대며) 근데, 갑자기 그건 왜 묻냐?
재석 : 아니 그냥. 정호 너는? 너는 학교 왜 다녀?
정호 : 나? 나야. 임마. 니들처럼 아침에 빵 사주는 친구들 때문에 다니지. 헤헤.
동진 : 근데, 고등학교 졸업 못하면 군대 안간다며?
정호 : 진짜야? 그럼, 학교 그만 둬야 겠네.
동진 : 으이구, 하여간. 재석이 너, 뭔 딴 생각있나 본데, 너무 고민 마라. 다 그런 거지, 뭐. 내
철학인데, 한국에서는 학교든 사회든 아니꼽고 더러워도 알아서 기어야 사는 거래. 명심하라고.
정호 : 동진아! 그래서 네가 그렇게 키가 작구나. 땅바닥에 붙기 쉬우라고.
동진 : 어이구 이 자식이!
Music -
Narr. : 요즘 들어 내게 있어 학교는 뭘까라는 생각이 부쩍 많이 든다. 왜 내가 학교에 계속 있어야 하는 걸까? 난 공부하고 잘 맞지도 않는데, 그냥 글이나 쓰면서 지내면 안 될까? 꼭 배우기 싫고 별로 필요도 없는 미적분이나 따분한 음악, 미술을 배워야만 하는 걸까? 모르겠다. 학교에서는 뉴스에 나올만하고, 영화에 나올 만한 놀라운 일들이 계속 터지지만 잠시 얘깃거리가 된 후에는 사라지고. 다시 잠잠해지고 평범해진다. 평범한 나의 한 친구는 학교에 마지못해 다니고, 다른 한 친구는 아무 생각이 없어 보이고. 나는? 난 그 둘과 다른 게 뭘까?
Music -
선생 : 야! 강재석!
재석 : 네?
선생 : 너, 내가 몇 번을 불러서 대답했는지 알아? 책상 밑에 그거 뭐야?
재석 : 예, 저.
Effect - 걸음 걷는 소리 (구두)
선생 : 이리 내. 안 내놔!
재석 : 저….
Effect - 책 뺐는 소리.
선생 : 이게 뭐야? "학교 다니는 이유에 대한 글모음" 뭐야 이거? 수업시간에 누가 이런 거 보래? 내용은 또 이게 뭐야? 쳇, 이런 거 볼 시간에 공부나 해, 임마.
Effect - 책 던지는 소리
재석 : 선생님, 꼭, 꼭…. 버리실 것까지는 없지 않습니까?
선생 : 뭐? 이 자식 눈 봐라. 네가 그렇게 쳐다보면 어쩔 꺼야?
재석 : 제, 제 겁니다. 왜 함부로 하시냐구요?
선생 : 뭐라고? 너 지금 대드는 거야? 수업 시간에 집중하라고 일러줬더니만 고마운 줄은 모르고 이 놈이 어디서? 이 놈아, 그 딴 걸 보고 있으니까 네 성적이 그 모양인거야. 학교 다니는 이유? 네가 학교를 제대로 안 다니니까 그런 게 궁금한 거야. 임마! 부모님이 뼈빠지게 번 돈으로 학교를 보내 놨으면 공부 열심히 해서 보답할 생각은 안하고, 어쭈, 이 놈 봐라. 눈 안 깔아! 허, 그래. 내가 신고 당할 까봐 못 때리는 줄 아나 본데, 이게.
Effect - 때리고 맞는 소리. (몇 차례 나다 갑자기 멈춤)
선생 : 이 거 안 놔? 한 번 해보자는 거냐? 내 너 그렇게 안 봤는데, 너 이제 보니 아주 몹쓸 놈이구나. 이거 놔, 이 놈아.
재석 : (외침) 젠장! 빌어먹을 학교. 이게 뭐야. 꼴도 보기 싫어. 때려칠거야. 그만둘 거라고.(--;)
Effect - 문 세게 닫는 소리.
Music -
Narr. : 순식간의 일이었다. 아무런 판단도 할 수 없는 잠깐의 시간이었다. 정말 잠깐 동안. 교실문을 박차고 나온 순간부터 집에 오는 그 길에서 수없이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내가 잘한 것이라고는 한 가지도 없었다. 하지만 잘못한 게 있다고 해서 그걸 인정하기도 싫었다. 그건, 그건 내 잘못이 아닌 것만 같았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 탓 같았다. 적어도 나 혼자만의 잘못은 아니 것만 같았다. 정말.
앞으로가 너무 걱정이었다. 솔직히 진짜 학교를 그만 두고 싶었지만 학교를 나가면 무엇부터 해야할지가 막막했고, 우선 엄마, 아빠 얼굴 보기가 너무 겁났다. 학교에서 고이 공부해서 좋은 대학은 아니더라도 대학에 가길 바라시는 부모님한테 이 일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돌아가서 선생한테 싹싹 비는 건 정말.
Music -
아빠 : 재석아, 뭐하니? 어서 선생님께 잘못했다고 빌어라.
재석 : 자, 잘못했습니다.
선생 : 강재석, 너 진짜 반성하고 있는 거냐?
아빠 : 어서, 그렇다고 말씀드려. 선생님, 제가 집에서 단단히 일러 놨으니까 다시는 그런 일 없을 겁니다. 인석아, 어서.
재석 : 죄송합니다. 선생님. 다, 다시는 안 그럴께요. 잘못했습니다.
Music -
Narr. : 학교를 그만 두려던 내가 고작 3일 동안 학교를 빠지고 사과했다. 아주 비굴했다. 비굴점수 100점 만점에 100점이다. 교무실을 나오면서 아버지는 멋있게 말씀하셨다. 남자는 굽힐 줄도 알아야 한다고. 하지만 그건 내게 왠지 아니꼬워도 알아서 기어야만 살아갈 수 있다는 얘기로 들려왔다.
Effect - 수업 종 소리.
반장 : 차려. 경례.
모두 : 안녕하세요.
선생 : 수업 시작하자. 오늘 진달래꽃 할 차례지? (점점 작아짐)다들 외워왔어? 십, 오번. 자 외워 봐. 못 외워? 나와. 이십 오번 외워 봐.
Narr. : 사건은 정말 평범하게 시작되어서 평범하게 끝이 났고 다시 평범한 학교 생활이 시작되었다. 선생님도 그렇고, 친구들도 모두 아무 일이 없었던 것처럼 느껴지나 보다. 그리고 나도 그래야 하는 것 같다. 어느새 내 입에는 "다 그런 거지, 뭐" 하는 말이 배어 있었다. 하지만 내겐 분명 변한 게 하나 있었다. 뭐라 말할 수도, 확실히 알 수도 없었지만 무언가 가슴속에서 죽어버린 게 하나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죽어버린 그것이 무엇인지 아직은 모르겠다. 아직은.
Music
Mix.
Music(Background) - Title Music.
<배우 배역 소개 및 인사>
Call Sign : W.B.S. 여기는 우신고등학교 교육 방송국입니다.
'오래된 이야기 > 흠칫.살짝.놀란.일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글로벌'하다는 것 (0) | 2011.07.12 |
---|---|
책장정리 (0) | 2011.04.03 |
'말' - 비트없는 16마디의 가사 (0) | 2010.02.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