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에 해당되는 글 2건

  1. 졸업. 두 번째 글. 2008.02.19
  2. 졸업 2007.04.30


얼마 전부터 계속 머릿 속을 맴도는 말이 있다. 이제 내게 졸업은 없다.

초등학교 때, 중학교 때의 졸업식은 새로운 시작을 기다리며 망각의 기회를 부여받는 순간이었다.....얼만큼 찌질했던 간에 다 잊을 수 있다. 모른 척 할 수 있다. Reset.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 시작하는 거다. 나의 실수와 사고들은 나만 알고 있으면 된다. 이제는 완전 다시 시작이다....라고 생각해버렸다. 환경의 변화는 내 고등학교 시절 한 번의 전학으로 그 대단한 효과를 보여줬다. 반에서 중간도 못하던 녀석이 8학군을 벗어나 반의 상위권으로 입성하는 놀라운 변화는 '환경의 변화에 따른 자신감 획득'을 자동적으로 발생시켰으니까.

(나는 내가 대학을 졸업했다는 사실이 부끄러울 만큼 글을 못쓴다. 국문과 전공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부끄럽다. 그렇지만 어찌되었건 졸업했으니..)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도, 대학교를 졸업하면서도...내가 어떤 친구들과 어떻게 지내며 살았는지, 나는 얼마나 존재감을 가진 인물이었던지에 대해서 잊을 수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정말 고등학교 때는 맨 앞에 앉아서 찌질했을 법한 사람이 대학 때 학생운동을 하다가 학교를 짤리는 것 같은 변화. 그런 변화가 가능한 것이 졸업이지 싶다.

하지만, 이제.
대학을 졸업하고 입학이 아닌 입사를 경험하는 순간, 더 이상 졸업의 쾌감에 대해서는 꿈도 꿀 수 없게 된다. 퇴사? 적어도 내가 일하는 쪽에서는 소문 다 난다. 그래, 퇴사를 해서 인간적인 결함을 숨겨보자. 그래도 내 경력은 이력서에 적히게 된다. 안 적으면 그만이라고? 그나마 없는 것보다는 나은 것이 현실 아닐까?


아무튼. 어른이 안되기 위한 최후의 보루는 이미 무너졌다. 더 이상의 Reset은 없다. 더 이상의 졸업은 없다. 지금 나의 학기는 방학도 없이 자세히 내 이력서에 기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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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했다. 작년에.
강희 덕에 반년도 지난 후에야 받은 졸업장. 졸업식을 제꼈다고 졸업장도 안챙겨보내주는 한성대국문과사무실 밉다. 원래 그런 건데 내가 개념없이 바라는 것인지는 모르겠다만...

졸업은. 또 하고 싶다.

유치원 졸업 때는 잘 기억안나지만..어쨌든 누나들처럼 뭔가 전과도 펴놓고 공부하고 그러고 싶었는지 어쨌는지...나도 아마 다른 아이들처럼 초등학교를 가고 싶어하지 않았을까. 뭐 그냥 별 기억없는 유치원 시절이었다. 사진을 아무리 뚫어져라 보고 엄마나 누나가 뭔가 말을 해줘도...난 한 개도 기억 안난다.
초등학교 때는..좀 어렴풋하지만 기억난다. 어줍잖게 학교 짱의 패거리에 껴설랑은 초등학생 주제에 수업을 제끼고 "천하만화"를 사보러 5단지 상가를 다녀오고..참..어이없었던 졸업반-6학년..어울리지도 않게 머리를 기르고 뭔 개깡인지 안경도 벗고 찍은 그 졸업사진 마냥(다행이 초점이 엉망이다) 흐릿흐릿한 그날들. 중학교에 가면 뭐가 있는 줄도 모르고 일단 국민학교라는 벗어난다는 것을 나름 특별하게 여겼던 것 같기는 하다. 학교 끝나고 착실히 공부하는 아이들이 보냈던 그 지긋지긋한 시간들을...난 놀이터에서...그냥 어디의 계단에서...대강대강 보내던 시절인 것은 분명한데...기억이 가물가물하군. 그래서 결말은...유치원보다는 인상깊었지만 여전히 흐릿한 기억이라는 것인 듯 싶다.
중학교 때. 고등학교 때. 다소 기억이 좀 더 분명하다. 문제는 이 때 부터다. 난 분명 실수가 많은 녀석이고 이것은 내가 어릴 때도 다르지 않았을 바. 중학교 때 저질렀던 몇 가지 나쁜 짓들. 억울했던 일들. 우스운 일들. 그런 것들이 기억하기 싫다. 좋은 기억은 잘 없다. 나쁜 기억들은 선명하다. 그래도 그나마 졸업은 내게 그것을 잊을 수 있는 기회였다. 뭔가 정리되는 듯하고..뒤돌아보지 않아도 될 것 같고.......딱 한 번 해본 전학보다는 살짝 덜하지만...정말 상큼한 변화-핑계 거리였다. (이 때의 변화는 과오를 대강 둘러쳐 막아버리는 가면과 망토를 뒤집어 씀이다.)
졸업은. 그렇다.
면죄부..........까지는 아니어도.. 뭔가 새로 시작할 기회이다. 그 말은 다시 말하면 새롭지 않은, 구질구질한 그것들을 덮어버릴 수 있는 찬스. 앞으로 만나는 사람들은 그다지 내 과거를 모르는 사람들. 난 이제부터 내 마음대로 포장할 수 있는 너무나 사랑스러운 위치. 그래서 내게는 회심의 미소가 가득한 졸업사진들이 있다. 아자, 이제 쪽팔린 거 다 까먹고 다시 잘 살아보자!

이제 더 이상 졸업은 없다. 꼭 그래서만은 아니지만 여하튼 대학 졸업앨범은 신청비를 돌려받아서 술 먹어버리고 안샀다. 회심의 미소가 없으니까...일까...아마 맞을 듯. 회심의 미소가 없는 우울한 졸업. 식날에는 가지도 않았다. (Mnet Japan에 납품하는 날이랑 겹쳤던가 해서 밤새서 뭘 하고는 11시까지 못자서 아마 안가버렸던 기억이다.) 뭔가 지난 실수를 덮어버리고 새로 시작하는 것이기는 한데....이번에 졸업하면 다시는 그런 기회가 없으니까. 사회에서 뭐라도 실수하면 2년 후,5년 후 잊어 줄 졸업이 어려우니까. 참, 졸업은 없으니까.

매 순간 긴장하고. 실수해도 용서가 안되고. 다음이 없는 게 사회생활이구나. 와...큰 일이다 싶다.
사실 이런 생각 내일이면 또 잊고 별 생각없이 되는대로 지껄이고, 아무렇게나 행동하고 할 내 모습이 선하다.
근데 어쩌나. 난 그런 내가 제일 사랑스러운데. 내 멋대로 하는 거야. 아무 이유없어.

젊다. 어리다.


더하기 1.
그래서....졸업하고 학교 때 친구를 만나는 게 가끔은 싫을 때가 있다. 내가 잘못한 거는..아직도 숨기고 싶고 상처같아서 말이다. 뭔가 대단히 (내가)구린 모습으로 헤어진 여자친구를 만나는 것만큼 싫지는 않지만 군대에서 갈구기만 한 후임병의 전화를 받아주는 것보다는 싫은 일이다. 해코지 당할까봐가 아니다. 그냥 덮어놓은 것으로 만족하는 그 기억이 다시 생각나는 게 싫을 뿐이다. 방한구석에 종류별로 잘 쌓아놓은 책 or CD를 구경하다가 아래쪽에 꽂힌 책 or CD를 꺼내야만 하는 일이 생겼을 때 느끼는 짜증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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