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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rewell 2008.07.01
1년 정도 팀장으로 모시던 나의 윗 분께서 오늘 우리회사로의 마지막 출근을 하셨다. 한두달 전부터 누가 요즘 어떻게 지내냐고 할 때마다 마음 속으로 제일 먼저 생각나던 사건이었다. 팀장님의 퇴사. 회사에 가서는 티 안내려고 노력했지만 티가 많이 나는지 과한 동정의 말씀을 주신 분들도 계셨다. 내가 불쌍해보이기는 할 수 있겠지만 굳이 그렇게 강조 안하셔도 되는데. 하지만 내가 처음 이 부서에 발령 받고 불만없었던 것도 이 분 밑에서 일할 것이 너무 기대되어서였고, 다른 사람들 말은 잘 무시해도 이 분이 뭐라하면 꿈벅 다 믿어버리고는 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겉으로는 심하 것은 아니야라고 하지만 그 동안 사실 과하게 많이 의지했던 분이었다.

사람이 살면서 특히, 일하면서 좋은 동료나 선후배를 만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일 것 같은데 나는 참 운이 좋았다. 이 회사 들어와서 만난 두 명의 전 상사들은 참 좋은 선배들이었다. 공교롭게도 두 명 모두 여성. 다들 친절했고, 권위의식 0%, 분업철저, 센스 만점에 인간적인 매력도 다분한 사람들이었다. 부족한 점을 지적해주고, 잘하면 칭찬해주고. 나도 과연 저런 선배가 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좋은 선배들이었다. 나는 아직까지는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이다.

이번에 퇴사하는 분이 내게 남기고 가는 것은 이런 저런 버릇들이다. 나 역시 누구처럼 남 흉내내는데 도가 튼 막내다 보니. 말할 때 쓰는 문장들의 종결패턴이나 대화의 시작을 끌어내는 수법, 남에게 부탁할 때 쓰는 단계식 텍스트 같은 것부터 상황을 파악하고 결정하는 과정도. 꼭 닮아버렸다기보다는 그냥 약간 익숙해져있다. 이 익숙함만을 가지고는 그 분을 따라하는 수준에조차 못미친다. 하지만, 영향을 받은 것들 만큼은 잘 기억하고 익혀두려고 한다. 잊지않으려고 한다. 일단 지금 생각할 때는 나쁜 게 아닌 것 같으니까. 이제 당분간 누가 옆에서 잡아주지 않는데 나혼자 폭주하면 안되니까. 나중에 누군가 혹은 내 자신이 나를 다잡아 줄 때까지는 일단 현상유지만이라도 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본다.

이제는 또 다른 누구를 만나게 될까. 흥미진진한 사건이다. 요즘 이 사건이 가장 주목되는 나의 사건이다. 내일부터는 아마 그 분께서 잘 막아주시고 계시던 일들이 나에게 혹은 또 다른 팀원에게 떨어질 것이다. 한가할 틈이 없을테니 다행이지만, 내 능력 밖의 일일까봐 걱정이다. 그러나, 익숙해진 몇 가지 버릇들을 잘 기억하며 잘 헤쳐나가야한다고 다짐해본다.

Farewell,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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